천년의 역사를 품은 채 로마의 동북쪽에 자리 잡은 티볼리(Tivoli). 이 작은 도시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그 흔적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적 보물창고입니다. 로마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아름다운 도시에는 어떤 매력이 숨어있을까요?
고대에서 현재까지, 티볼리의 역사
티볼리는 원래 ‘티부르(Tibur)’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독립된 도시국가였습니다. 기원전 시대에는 로마의 경쟁 도시였으며, 라틴 동맹에 참여했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경 로마의 세력권에 들어갔고, 기원전 90년에는 로마 시민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 – 시원한 산바람과 풍부한 계곡물 – 덕분에 로마 시대부터 황제와 귀족들의 휴양지로 각광받았습니다. 특히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로마의 지배층이 여름을 보내기 위해 찾아오는 명소였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이민족의 침략을 당해 쇠퇴했으나, 10세기경부터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시 한번 부흥기를 맞이하며, 카디널과 귀족들의 여름 별장이 건설되었고, 그 중 일부는 오늘날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현재 티볼리는 이탈리아 라치오주 로마현에 위치한 코무네(기초자치단체)로, 약 6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로마로부터 동북동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이 도시는 역사적 유산과 자연 경관이 공존하는 곳으로, 로마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필수 방문지가 되었습니다.
티볼리의 보물, 세계문화유산
티볼리는 두 곳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특별한 도시입니다. 각각의 유산이 들려주는 역사적 이야기는 방문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1. 빌라 아드리아나 (Villa Adriana)
티볼리에서 가장 유명한 고대 유적 중 하나인 빌라 아드리아나는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us)가 서기 118년부터 138년 사이에 건설한 이 대규모 별장 단지는 그의 여행 경험을 반영한 건축물들로 가득합니다.
하드리아누스는 제국의 각 지역을 순방하며 그리스와 이집트 등의 건축 양식에 매료되었고, 이를 자신의 별장에 재현했습니다. 빌라 아드리아나는 사실상 작은 도시의 규모로, 30개 이상의 건물, 수영장, 온천, 도서관, 정원 등 120헥타르(약 36만 평)의 광활한 면적을 차지했습니다.
이 별장은 단순한 휴양지가 아닌, 제국의 통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하드리아누스는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국정을 운영했으며, 당시 최고의 예술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을 조성했습니다. 현재는 대부분 유적만 남아있지만, 고대 로마의 웅장함과 기술력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장소입니다.
2. 빌라 데스테 (Villa d’Este)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빌라 데스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정원 예술을 대표하는 걸작입니다. 1550년 9월 9일, 티볼리의 지사로 임명된 이폴리토 데스테(Ippolito d’Este) 추기경이 건설한 이 빌라는 그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빌라 데스테의 가장 큰 특징은 500여 개가 넘는 분수와 화려하게 장식된 연못, 그리고 세심하게 설계된 정원입니다. 당시 최고의 정원 디자이너이자 수리공학자인 피로 리고리오(Pirro Ligorio)가 설계한 이 정원은 16세기 이탈리아 정원 예술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특히 ‘백 분수의 거리(Avenue of a Hundred Fountains)’와 ‘오르간 분수(Water Organ Fountain)’는 방문객들이 가장 사랑하는 명소입니다. 오르간 분수는 물의 압력을 이용해 실제 오르간 소리를 내는 수리공학의 걸작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빌라 데스테는 ‘경이로운 정원(Giardini delle meraviglie)’으로 불리며, 유럽 전역의 정원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정원 예술의 본보기로 여겨지며, 매년 수많은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3. 숨겨진 보석, 빌라 그레고리아나 (Villa Gregoriana)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아니지만, 빌라 그레고리아나 역시 티볼리를 방문하는 이들이 놓쳐서는 안 될 명소입니다. 19세기 교황 그레고리 16세의 이름을 딴 이 공원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로마 시대의 유적이 어우러진 특별한 장소입니다.
가파른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그리고 아름다운 폭포가 있는 이곳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특히 아니에네 강(River Aniene)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폭포와 깊은 계곡은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공원 내에는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인 ‘베스타 신전(Temple of Vesta)’도 있어 역사와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티볼리의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 상대적으로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티볼리의 매력, 역사를 넘어서
티볼리의 매력은 단순히 역사적 유적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중세 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구시가지는 좁은 골목길과 전통적인 건물들로 가득하며, 현지 주민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소박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방문객을 반깁니다.
티볼리의 요리는 라치오 지방의 전통을 따르며, 풍부한 올리브 오일과 신선한 현지 농산물을 사용한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특히 ‘포르체타(Porchetta)’라 불리는 돼지고기 요리와 현지에서 생산된 와인은 여행의 맛을 더해줄 것입니다.
또한 티볼리는 사계절 내내 아름답지만, 특히 봄과 가을에 방문하면 더욱 쾌적한 날씨와 함께 정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빌라 데스테의 분수들이 만들어내는 물소리는 여름의 더위를 식혀주고, 가을의 단풍과 어우러진 정원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합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 티볼리
티볼리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현재까지,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책과 같은 도시입니다. 화려했던 제국의 황제들이 휴식을 취했던 빌라 아드리아나, 르네상스의 정수를 담은 빌라 데스테, 그리고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빌라 그레고리아나까지, 각각의 장소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로마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하루를 티볼리에서 보내는 것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천년의 역사가 담긴 이 아름다운 도시는, 방문하는 이들에게 잠시 현실을 잊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