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비추는 구항구(Vieux Port)에 들어서면 갈매기 소리와, 요트 마스트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 그리고 시장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어우러진 마르세유의 일상이 펼쳐집니다. 푸른 지중해의 향기와 함께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이곳,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가장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곳입니다.
2600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시
마르세유는 기원전 600년경 그리스인들이 ‘마살리아(Massalia)’라는 이름으로 정착지를 만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소아시아의 포카이아(현재의 터키 포차)에서 온 그리스 선원들이 처음 발견한 이 항구 도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 지속적으로 사람이 살아온 정착지 중 하나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마실리아(Massilia)’로 불리며 줄리어스 시저의 정복을 겪었고, 이후 수세기 동안 다양한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마르세유의 역사는 권력, 무역, 운명이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입니다. 도시는 수많은 침략과 역병, 전쟁을 겪으면서도 항상 자신만의 독립적인 정신을 유지해왔습니다. 17세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무역항 중 하나로 성장했으며, 프랑스 식민지 제국의 무역 경로를 통해 번영을 누렸습니다. 마르세유의 항구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중동,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코스모폴리탄 도시
마르세유는 그 긴 역사 동안 다양한 이민자들의 물결을 받아들여 왔습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북아프리카, 코르시카, 아르메니아, 베트남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도시의 문화적 모자이크를 형성했습니다. 이러한 다문화적 특성은 마르세유의 음식, 음악, 언어, 생활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르 파니에(Le Panier)’ 지구는 마르세유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좁은 골목길과 화려한 벽화,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한때 어부와 이민자들의 거주지였던 이곳은 이제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화려한 그래피티와 트렌디한 레스토랑으로 가득한 ‘노트르담 뒤 몽(Notre Dame du Mont)’ 지역은 2024년 타임아웃 매거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마르세유의 문화는 전통과 현대성이 절묘하게 융합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2013년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된 이후, 도시는 문화적 르네상스를 경험하고 있으며, 수많은 미술관과 갤러리, 공연장이 생겨났습니다.
숨막히는 자연경관과 랜드마크
마르세유의 상징인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Notre Dame de la Garde)’ 성당은 도시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보나 메르(Bonne Mère, 좋은 어머니)’라 불리는 이 성당은 19세기에 지어졌으며, 화려한 모자이크와 금빛 마돈나 동상으로 유명합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마르세유의 전망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마르세유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칼랑크 국립공원(Parc National des Calanques)’입니다. 도시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공원은 석회암 절벽 사이로 형성된 좁은 만(灣)과 에메랄드빛 바다, 그리고 아름다운 하이킹 코스로 유명합니다. 도시의 번잡함을 잠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기에 완벽한 장소입니다.
‘샤토 디프(Château d’If)’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된 섬 요새로, 마르세유 앞바다에 위치해 있습니다. 과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인기 명소가 되었습니다.
2013년에 개관한 ‘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MuCEM, Musée des Civilisations de l’Europe et de la Méditerranée)’은 현대적인 건축미와 함께 지중해 문명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검은 콘크리트 레이스 패턴으로 뒤덮인 이 독특한 건물은 마르세유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습니다.
맛의 천국, 마르세유 음식 문화
마르세유의 음식은 지중해 연안의 신선한 재료와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풍미를 자랑합니다. 도시의 대표적인 요리는 단연 ‘부야베스(Bouillabaisse)’입니다. 원래는 어부들이 팔지 못한 생선으로 만든 가난한 이들의 수프였지만, 지금은 고급 요리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최소 세 종류 이상의 지역 생선과 해산물, 감자, 그리고 사프란, 페넬, 오렌지 껍질 등의 향신료가 어우러진 이 요리는 마르세유를 방문한다면 꼭 맛봐야 할 음식입니다.
‘파니스(Panisse)’는 병아리콩 가루로 만든 튀김 케이크로, 간식이나 전채로 즐깁니다. ‘피에 파케(Pieds Paquets)’는 양 내장을 속을 채워 만든 전통 요리이며, 북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은 쿠스쿠스도 마르세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르세유의 시장은 도시의 다문화적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입니다. ‘노아이(Noailles)’ 지역의 시장에서는 북아프리카의 향신료, 지중해 과일, 올리브 오일, 치즈 등 다양한 식재료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베트남, 코모로, 코르시카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르세유의 일상과 전통
마르세유 사람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깁니다. ‘페탕크(Pétanque)’라는 전통 구기 게임을 즐기는 노인들, ‘라 칸비에르(La Canebière)’ 대로를 거닐며 쇼핑을 즐기는 시민들, 구항구 주변의 카페에서 여유롭게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들… 이 모든 일상의 장면들이 마르세유의 매력을 구성합니다.
마르세유는 연중 다양한 축제를 개최합니다. 2월 2일 성촉절에는 ‘나베트(Navette)’라는 배 모양의 비스킷을 즐기는 전통이 있으며, 여름에는 ‘레스타크(l’Estaque)’ 지역에서 수상 창싸움 경기가 열립니다. 또한, 마르세유는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의 탄생지로도 유명합니다. 1792년 혁명군 장교 루제 드 릴이 이 곳에서 작곡한 이 노래는 나중에 프랑스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마르세유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전통 비누입니다. 올리브 오일을 주 원료로 만드는 마르세유 비누는 수세기 동안 전통 방식으로 제조되어 왔으며, 현재도 도시의 중요한 수공예품으로 남아있습니다.
변화하는 마르세유, 미래를 향한 발걸음
과거에는 범죄와 불안정으로 악명 높았던 마르세유는 최근 수십 년간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특히 2013년 유럽 문화 수도 선정 이후, 도시 재생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많은 지역이 새롭게 탈바꿈했습니다. ‘라 졸리에트(La Joliette)’ 지구는 한때 낙후된 항구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현대적인 비즈니스 센터와 주거 단지로 변모했습니다.
그러나 마르세유는 여전히 프랑스의 다른 대도시들과는 다른 거친 매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변방에 위치한 이 도시는 파리의 세련됨보다는 솔직하고 직접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습니다. BBC가 표현한 대로, 마르세유는 프랑스의 ‘좋은 성품(good natured)’을 지닌 도시입니다.
방문자를 위한 작은 팁
마르세유를 방문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봄(4-6월)과 가을(9-10월)입니다. 여름은 관광객이 많고 기온이 높을 수 있으며, 겨울은 강한 ‘미스트랄(Mistral)’ 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도시를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마르세유는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이므로, 주요 명소들은 도보로 충분히 방문할 수 있습니다.
마르세유에서는 현지인들처럼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항구 주변의 카페에서 파스티스(Pastis, 아니스 향의 술)를 한 잔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거나, 칼랑크 국립공원에서 하이킹을 즐기거나, 지역 시장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맛보는 등 도시의 일상에 녹아드는 경험을 추천합니다.
2600년의 역사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마르세유는 단순한 관광지 이상의 매력을 지닌 도시입니다. 파리나 니스처럼 세련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솔직함과 진정성은 방문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프랑스 최고(最古)의 도시이자 지중해의 진주, 마르세유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푸른 바다와 황금빛 햇살, 다채로운 문화와 풍미 가득한 음식이 있는 이곳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마르세유는 분명 여러분의 기대 이상의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