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는 스페인 동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이어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풍부한 역사와 문화, 아름다운 건축물, 화려한 축제, 그리고 맛있는 요리까지 스페인의 매력을 한 곳에서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발렌시아는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숨겨진 보석 같은 도시입니다.
발렌시아의 역사: 로마부터 현대까지
발렌시아의 역사는 기원전 1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로마의 식민 도시로 처음 건설되었으며, ‘발렌티아(Valentia)’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이것이 현재 ‘발렌시아’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로마의 지배 당시에는 중요한 수비대 주둔지로서 발전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서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8세기에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이슬람 시대는 발렌시아의 문화와 건축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도시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238년, 기독교 세력인 아라곤의 하이메 1세가 발렌시아를 정복하면서 공식적으로 ‘발렌시아 왕국’이 건국되었습니다. 이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로 1707년 스페인 펠리페 5세에 의해 발렌시아는 스페인 왕국에 통합되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발렌시아는 산업 혁명과 도시화를 경험했으며, 스페인 내전(1936-1939) 동안에는 공화파의 중심지였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예술과 과학의 도시로 새롭게 변모하며 스페인의 주요 관광지이자 문화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예술과 과학의 도시: 현대적 랜드마크
발렌시아의 가장 상징적인 명소인 ‘예술과 과학의 도시(Ciudad de las Artes y las Ciencias)’는 1996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확장되어 온 거대한 건축 복합단지입니다. 유명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에 의해 설계된 이 웅장한 공간은 발렌시아의 현대적인 면모를 대표합니다.
총 면적 35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이 복합단지는 약 1.8km 길이로 이어진 5개의 주요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엘 헤미스페릭(El Hemisfèric): 1998년 첫 번째로 완공된 건물로, 거대한 눈 모양을 한 천문관입니다. IMAX 영화관과 플라네타리움이 있습니다.
2. 과학 박물관(Museo de las Ciencias Príncipe Felipe): 상호작용하는 전시물이 특징인 과학 박물관으로, 건물 자체가 인간의 골격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입니다.
3. 오세아노그라픽(Oceanogràfic): 유럽 최대 규모의 해양 수족관으로, 500여 종의 해양 생물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4. 레이나 소피아 오페라 하우스(Palau de les Arts Reina Sofía): 발렌시아의 오페라 하우스로, 우아한 곡선 형태의 건축물입니다.
5. 아고라(Àgora): 다목적 전시와 이벤트 공간입니다.
이 복합단지는 물과 반사되는 표면을 활용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마치 물에 떠 있는 구조물처럼 보이며 방문객들에게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선사합니다. 특히 야간에는 조명에 의해 더욱 환상적인 모습을 자랑합니다.
투리아 정원: 도시의 녹색 심장
발렌시아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투리아 정원(Jardín del Túria)’입니다. 이 독특한 공원은 원래 투리아 강이 흐르던 자리입니다. 1957년 큰 홍수로 인해 발렌시아가 막대한 피해를 입은 후, 홍수 방지책으로 강의 흐름을 도시 외곽으로 우회시키고, 원래 강이 흐르던 자리를 도시 공원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약 9km에 걸쳐 도시를 관통하는 이 광대한 녹지 공간은 스페인에서 가장 큰 도시 공원 중 하나입니다. 공원 내에는 다양한 정원, 스포츠 시설, 놀이터,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있어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휴식 공간입니다.
특히 공원 내에 위치한 걸리버의 놀이터는 꼭 방문해볼 만한 곳으로, 걸리버 여행기에서 영감을 받아 거인 걸리버가 누워있는 형태의 대형 놀이시설입니다. 투리아 정원은 도시의 양쪽 끝을 잇는 역할을 하며, 한쪽 끝에는 역사적인 구시가지가, 다른 쪽에는 현대적인 예술과 과학의 도시가 위치해 발렌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적으로 연결해주고 있습니다.
역사적 명소: 구시가지의 매력
발렌시아의 구시가지는 중세 시대의 매력이 살아있는 곳으로, 좁은 골목길과 역사적인 건물들이 여행자들을 시간 여행으로 안내합니다. 주요 명소로는 다음과 같은 곳들이 있습니다:
1. 발렌시아 대성당(Cathedral of Valencia): 13세기에 지어진 대성당으로,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성배가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2. 미겔레테 종탑(El Miguelete): 대성당 옆에 위치한 고딕 양식의 종탑으로, 207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발렌시아 전체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3. 플라자 데 라 비르헨(Plaza de la Virgen): 발렌시아의 중심 광장으로, 아침 식사를 즐기기 좋은 곳입니다. 분수와 주변의 카페들이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4. 라 론하 데 라 세다(La Lonja de la Seda): 15세기에 지어진 실크 시장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발렌시아의 상업적 번영을 상징합니다.
5. 발렌시아 중앙 시장(Mercado Central): 유럽에서 가장 큰 신선식품 시장 중 하나로, 1928년에 지어진 아르누보 스타일의 건물입니다. 다양한 현지 식재료와 특산품을 구경하고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6. 산토스 후아네스 교회(Iglesia de los Santos Juanes): 13세기 중반에 이슬람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교회로,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내부가 특징입니다.
7. 세라노스 탑(Torres de Serranos): 14세기에 지어진 성문으로, 도시의 중세 방어벽의 일부였습니다. 현재는 전망대로 이용되어 발렌시아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빠에야의 고향: 발렌시아 음식 문화
발렌시아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요리 ‘빠에야(Paella)’의 발상지입니다. 빠에야라는 명칭은 19세기에 등장했으며, 1840년 처음으로 지역 신문에 ‘빠에야 발렌시아나(Paella Valenciana)’라는 이름과 구체적인 레시피가 기록되었습니다.
‘빠에야’라는 단어는 원래 이 요리를 만드는 넓고 평평한 팬을 가리키는 발렌시아어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팬(pan)을 나타내는 고대 프랑스어 ‘paelle’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빠에야는 처음에는 발렌시아 농촌 지역에서 농부들이 들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넓은 팬에 넣고 쌀과 함께 조리한 소박한 음식이었습니다. 전통적인 발렌시아 빠에야는 토끼고기, 닭고기, 녹색 콩, 흰 콩, 토마토, 쌀, 샤프란, 로즈마리, 올리브 오일로 만들어졌습니다.
발렌시아 사람들은 빠에야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합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빠에야는 오직 발렌시아 지역에서 나는 재료들을 바탕으로 전통 조리법에 따라 만들어진 ‘빠에야 발렌시아나’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해산물 빠에야, 혼합 빠에야 등 다양한 변형이 생겨났으며, 현재는 스페인 전역과 전 세계에서 다양한 형태의 빠에야를 맛볼 수 있습니다.
발렌시아 쌀 중에서도 ‘봄바(Bomba)’라는 품종이 약 130년 된 빠에야의 주요 품종으로, 이 쌀은 요리 후에도 물성이 지속되어 밥 모양이 유지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발렌시아의 또 다른 특별한 음료로는 ‘아구아 데 발렌시아(Agua de Valencia)’가 있습니다. 이름은 ‘발렌시아 물’이지만, 실제로는 오렌지 주스, 카바(스페인 스파클링 와인), 진, 보드카를 섞은 칵테일입니다.
라스 파야스: 발렌시아의 불꽃 축제
발렌시아의 가장 유명한 축제인 ‘라스 파야스(Las Fallas)’는 매년 3월 15일부터 19일까지 개최됩니다. 이 축제는 발렌시아의 수호성인 성 호세(San José)를 기리는 행사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축제의 주인공은 ‘파야(falla)’라는 거대한 조형물들입니다. 이 조형물들은 종이 마체(papier-mâché)와 나무로 만들어지며, 대부분 정치적, 사회적 풍자를 담고 있습니다. 발렌시아 각 지역의 주민들이 1년 동안 정성을 들여 만든 이 예술 작품들은 축제 기간 동안 도시 곳곳에 전시됩니다.
라스 파야스 축제는 다음과 같은 주요 행사로 구성됩니다:
1. 라 마스클레타(La Mascletà): 매일 오후 2시 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화약 축제로, 강력한 폭죽 소리가 특징입니다.
2. 라 플란타(La Plantà): 3월 15일, 파야 조형물들을 도시 곳곳에 설치하는 행사입니다.
3. 라 오프렌다(La Ofrenda): 3월 17-18일, 전통 의상을 입은 발렌시아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 동상에 꽃을 바치는 행렬입니다.
4. 라 크레마(La Cremà): 3월 19일 밤, 축제의 절정으로 모든 파야 조형물들을 불태우는 행사입니다. 이는 새로운 봄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발렌시아 사람들은 축제 기간 동안 ‘팔레라(fallera)’라고 불리는 전통 의상을 입으며, 도시 전체가 음악, 춤, 불꽃놀이로 가득 찬 열정적인 분위기에 휩싸입니다.
지중해의 천혜 자연환경
발렌시아는 지중해성 기후의 혜택을 받아 연중 300일 이상 맑은 날씨를 자랑합니다. 도시 주변에는 아름다운 해변들이 있어 여름철 휴양지로도 인기가 많습니다.
1. 말바로사 해변(Playa de la Malvarrosa): 발렌시아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으로, 넓은 모래사장과 해변가 산책로가 특징입니다.
2. 라스 아레나스 해변(Playa de las Arenas): 말바로사 해변과 이어지는 해변으로, 주변에 해산물 레스토랑이 많아 식도락 여행자들에게 인기입니다.
3. 알부페라 자연공원(Parque Natural de la Albufera): 발렌시아 남쪽에 위치한 민물 호수와 습지대로, 다양한 조류와 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이곳은 또한 발렌시아 쌀 재배의 중심지로, 빠에야의 주재료인 쌀이 이곳에서 생산됩니다.
발렌시아 여행 팁
1. 최적의 방문 시기: 봄(3-5월)과 가을(9-11월)이 가장 좋습니다. 특히 3월 중순의 라스 파야스 축제 기간에 방문하면 발렌시아의 열정적인 문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교통: 발렌시아는 메트로, 버스, 트램 등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투리아 정원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것도 도시를 둘러보는 좋은 방법입니다.
3. 숙박: 구시가지나 루사파(Ruzafa) 지역에 숙박하면 주요 관광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현지인들과 교류하고 싶다면 에어비앤비에서 개인 룸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4. 음식: 정통 빠에야를 맛보려면 알부페라 호수 주변 레스토랑을 추천합니다. 또한 발렌시아 중앙 시장에서 신선한 과일과 현지 식재료를 구입해보세요.
5. 현지 문화 체험: 일요일 아침에는 성당 광장에서 열리는 전통 춤 공연 ‘라 단사’를 관람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발견의 도시 발렌시아
발렌시아는 2000년이 넘는 역사와 현대적인 매력이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고대 로마의 흔적부터 첨단 건축물까지, 전통 빠에야부터 현대적인 퓨전 요리까지, 발렌시아는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스페인 대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적어 여유롭게 현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발렌시아의 매력입니다. 풍부한 역사, 화려한 문화, 맛있는 음식, 친절한 현지인들이 어우러진 이 아름다운 도시는 스페인 여행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보석 같은 장소입니다.
발렌시아는 여행자들에게 단순한 관광지 이상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은 스페인의 진정한 삶의 방식과 지중해의 여유로운 리듬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렌지 나무가 늘어선 거리, 중세 건축물의 그림자, 현대 건축의 빛나는 곡선, 그리고 지중해의 푸른 바다까지 – 발렌시아는 모든 감각을 만족시키는 다채로운 여행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