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토리노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알프스산맥과 인접해 있어 뛰어난 자연경관을 누릴 수 있으며 세계적인 박물관과 고풍스러운 건축물, 그리고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초콜릿과 커피, 와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보이아 왕가의 화려한 유산
토리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보이아 왕가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 도시는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라, 한때 이탈리아 통일의 중심지였던 곳입니다. 1563년 사보이아 공국이 수도를 토리노로 옮기면서, 이 도시는 이탈리아의 정치적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사보이아 왕가는 토리노를 ‘작은 파리’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어갔습니다.
사보이아 왕가의 영향력은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17세기에 지어진 토리노 왕궁(Palazzo Reale)은 바로크 건축 양식의 걸작으로, 금, 보석, 고급 직물 등 화려한 소재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궁전 내부의 웅장한 계단과 화려한 융단, 그리고 역사적인 무기들이 보관된 병기고는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또 다른 중요한 건물인 마다마 궁전(Palazzo Madama)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8-19세기 사보이 왕가가 사용하던 각종 가구들과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 왕실 생활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박물관들
토리노는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히는 박물관 도시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토리노 이집트 박물관(Museo Egizio)입니다. 1824년에 설립된 이 박물관은 이집트 본토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집트 문화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시 중인 유물 6,500여 점과 소장품 25,000여 점을 통해 고대 이집트 문명의 신비로움을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상징인 몰레 안토넬리아나(Mole Antonelliana)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입니다. 1863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26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완성된 이 건물은 토리노의 심볼 타워로, 현재는 영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건물 자체도 인상적이지만, 파노라마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 토리노 시내와 알프스산맥의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 애호가들에게는 토리노 자동차 박물관(Museo Nazionale dell’Automobile)이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던 토리노답게, 희귀한 자동차들의 웅장한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토리노의 수의와 종교적 의미
토리노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바로 토리노 대성당(Duomo di Torino)입니다. 1498년 성 세례 요한을 추모하여 왕궁 옆에 건설된 이 성당에는 전 세계 기독교도들의 관심을 끄는 유물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바로 ‘토리노의 수의(Shroud of Turin)’입니다.
가로 약 4미터, 세로 약 1미터 크기의 이 아마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형상이 남아 있습니다. 중세 이후 예수의 장례식 때 사용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며, 성의(聖衣)라고도 불립니다. 과학적 검증을 통해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신자들에게는 성스러운 유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초콜릿과 커피의 도시
토리노는 이탈리아 초콜릿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특히 ‘지안두이오토(Gianduiotto)’라는 토리노 특산 초콜릿은 도시의 진정한 상징입니다. 헤이즐넛과 초콜릿을 완벽하게 조화시킨 이 달콤한 간식은 부드럽고 포근한 맛으로 모든 방문객들이 맛보아야 할 필수 아이템입니다.
구이도 고비노(Guido Gobino) 본점은 토리노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유명한 초콜릿 가게입니다. 비록 변두리 주택가 후미진 곳에 자리해 있어 찾기가 쉽지 않지만, 그만큼 현지인들만이 아는 진짜 맛집의 느낌을 줍니다. 또한 100% 유기농 ‘빈 투 바’ 제품으로 진행되는 초콜릿 시음 체험도 가능하며, 피에몬테의 바롤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향기로운 와인과의 페어링도 즐길 수 있습니다.
커피 애호가들에게 토리노는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탈리아 3대 커피 브랜드 중 하나인 라바짜(Lavazza)의 1호점이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면 토리노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2006 동계올림픽의 유산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은 이 도시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9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토리노는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가장 큰 도시가 되었으며, 80개 국가에서 2,508명의 기록적인 선수들이 참가했습니다. 한국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올림픽이었는데, 진선유가 쇼트트랙 여자 1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토리노 동계올림픽 대한민국 여자 선수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올림픽 이후 토리노는 도시 재생의 좋은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자동차업체 피아트의 몰락으로 쇠퇴하던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많은 토리노 시민들은 “토리노의 역사는 2006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할 정도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현대적 매력과 미래 지향적 문화
토리노는 과거의 영광에만 안주하지 않고 현대적인 문화와 예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최대 식품 체인인 이탈리(Eataly)의 본점도 토리노에 위치해 있어, 이탈리아 전통 식문화와 현대적 식품 유통의 만남을 보여줍니다.
또한 정부의 체계적인 도시화 정책과 대중들의 관용적인 성향 덕분에 현대 건축물들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비세린, 수의, 사보이 왕조의 궁전 같은 전통적인 명소뿐만 아니라, 현대화된 토리노의 예술과 건축물들도 도시의 새로운 매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교통과 접근성
토리노는 밀라노에서 기차로 약 1시간,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토리노 산드로 페르티니 국제공항을 통해 이탈리아 국내 및 유럽 각국으로의 항공노선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도시 내에는 지하철(Metro)도 운영되고 있어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토리노는 화려한 왕실 문화와 깊이 있는 역사, 세계적인 박물관들, 그리고 달콤한 초콜릿과 진정한 커피 문화까지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여행지입니다. 로마나 피렌체만큼 유명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더 진정한 이탈리아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